티스토리 뷰

부동산 법률정보

민사재판, 그들만의 리그?

이찬승 변호사 2023. 11. 23. 15:10

 

 

안녕하세요. 법무법인 비츠로의 이찬승 변호사입니다.

 

 

민사 소송에서 재판은 변론 과정으로 이루어집니다. 원고가 처음 소장을 내고 피고가 그에 대한 답변서를 제출하면 제1회 변론 기일을 재판부에서 열게 됩니다. 민사 재판은 원고와 피고가 서로 주장과 증명을 통해 논쟁(변론)을 실컷 하고, 더 이상 변론할게 없으면 변론을 종결하고 판사님이 선고 기일을 지정합니다. 이러한 변론 과정은 원고와 피고 사이의 논쟁이지 판사님이 당장 그 논쟁에 껴들어 판단하는 것이 아닙니다. 판사님, 그러니까 법원은 원고와 피고가 충분히 변론을 다 했다고 하면 이제 그 변론 내용을 토대로 선고 기일에 판단(판결선고)하는 것이죠.

 

 

 

 

처음 민사 재판을 하게 되는 의뢰인분들께서 첫 변론기일에 출석했다가 법정에서 나오면서 이게 끝이에요? 이게 다에요?’ 이런 질문을 많이 합니다. 판사님은 별다른 말도 없고, 원고와 피고 측 변호사가 서로 제출한 서면과 증거만 확인하고 재판을 마치는 것을 보고 말이죠. 그도 그럴 것이 드라마에서 보던 치열한 구두 변론이라던가 이의있습니다!’라는 외침이라던가, 고성이 오고 가는 공방전은 없고, 왜 판사님은 아무런 지침도 주지 않는지 도통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는 지극히 민사소송법에 따른 것이고 현실적인 것입니다. 판사님은 변론 기일에 소송 절차를 진행하고 주관할 뿐 원고나 피고 어느 쪽이든 당사자 주장에 관여하여 당장 잘잘못을 논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다 어느 일방에게 조언을 해주는게 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를 변론주의, 처분권주의라고 하는데 쉽게 말해 변론 기일에는 원고와 피고가 서로 알아서 변론을 하는 자리일 뿐 당장 판사님이 관여하거나 판단하는 자리가 아닌 것입니다.

 

 

 

 

그런데 원고와 피고의 변론은 미리 변론 기일 전에 준비해와야 합니다. 그 준비라는 것이 들어보셨겠지만 준비서면입니다. 원고와 피고는 준비서면을 통해 주장을 구체적으로 적고 그에 대한 증거를 첨부해서 미리 법원에 제출하는 것이죠. 그렇다보니 변론 기일에 이미 제출한 준비서면의 내용을 굳이 재차 반복해서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미리 제출한 준비서면을 판사님도 이미 읽어봤고 상대방도 송달받아 읽어보고 그에 대한 반박 준비서면도 내고 나서 변론 기일이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최근에는 구두변론주의라고 해서 판사님이 법정에서 간략히라도 구두로 진술하게끔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만, 어디까지나 간..히입니다. 법원에 하루에 진행해야 할 사건이 산더미인데 준비서면에 적은 내용을 일일이 다시 다 읽고 있으면 곤란하죠. 그렇다보니 변론 기일이 진행되는 모습을 보면,

 

 

판사님 : “원고 측에서 제출한 00. 00.자 준비서면 진술하고 서증 갑제#호증 제출했고,”,

 

원고 변호사 : “”,

 

판사님 : “피고 측에서 제출한 00. 00.자 준비서면 진술하고 서증 을제#호증 제출했네요.”,

 

피고 변호사 :“”,

 

판사님 : “쌍방 더 하실거 있나요?”

 

 

더 할게 있으면 변론기일을 한번 더 잡고, 없으면 종결하고 선고기일을 잡고 끝납니다. 이러니 변론 기일에 재판을 하긴 한건지, 뭐가 이렇게 무미건조한지, 심지어 이럴거면 굳이 법원에 출석해서 하는 이유가 뭔지 싶은 생각이 드는거죠.

 

 

이런 과정에서 일반인이라면 재판을 어떻게 준비해야하는지, 내가 재판을 잘 준비하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야말로 민사 재판은 당사자가 알아서 변론해야 하니까요. 하지만 그 와중에도 중요한 힌트를 얻을 수 있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민사 재판에서 법원은 소송의 절차를 주관하는 지휘자나 마찬가지입니다. 원고와 피고가 알아서 변론을 해야 하긴 하지만 서로 동문서답을 하는 식이거나, 법적으로 정확히 어떤 주장을 하는지 애매모호하다거나, 분명하게 밝혀져야 할 사실관계가 드러나지 않거나 하면 법원은 소송 지휘권을 행사하여 쟁점을 정리하고, 주장을 구체화하도록 명하고, 불분명한 사실을 명확히 밝히도록 석명을 명하기도 합니다.

 

 

만약 판사님이 이처럼 쟁점 정리나 석명 명령을 한다면 반드시 주의깊게 들어야 합니다. 법원이 쟁점을 정리하는 것은 십중팔구 그 쟁점에 관한 판단에 따라 재판의 결과가 달라진다는 예고나 다름없습니다. 판사님이 쟁점을 정리해 줬는데도 계속 다른 얘기만 하고 있으면 패소하려고 작정한 셈이죠. 또한 석명 명령을 내렸다면 판사님이 그 내용을 왜 궁금해하실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판단을 하는데 있어서 반드시 알아야 할,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관계이니까 석명을 명하는 것이겠죠. 마찬가지로 판사님이 그 사건에서 중요하게 보는 지점을 예상해 볼 수 있습니다.

 

 

변호사 없이 스스로 민사 소송을 하는 상대방을 만나면 아무리 판사님이 쟁점을 정리해주고 석명 명령을 내려도 계속 겉도는 주장만 하는 경우를 꽤나 많이 봅니다. 변호사인 제 입장에서야 나쁠게 없지만 한편으로는 안타깝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적에게 조언을 해줄 수도 없는 노릇이구요. 이런 점에서 어찌보면 민사 재판은 알만한 사람들만 이해하는 그들만의 리그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 리그에서 소외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반드시 변호사의 상담을 받아야 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