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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법무법인 비츠로 부동산전문변호사 이찬승 변호사입니다.

 

 

집을 팔려면 사려고 하는 사람한테 보여줘야 팔겠죠? 새로 세입자를 구하려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수박 한 통을 사더라도 두드려 보고 사는데 하물며 집을 사거나 임차하는데 보지도 않고 결정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그런데 내 집에 세입자가 있으면 집을 보여주는게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세입자가 우호적이면 좋겠지만 집을 보여주기를 거부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아무래도 세입자는 집 주인이 집을 팔거나 새로운 세입자를 구하는 것과 아무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다보니 내가 왜 굳이 협조해야하지?’라는 입장일 수도 있습니다.

 

 

 

예전에는 임대차계약(전세 또는 월세계약)이 끝날 무렵까지 새로운 세입자가 구해지지 않으면 으레 집주인은 새로운 세입자가 구해지지 않아서 보증금을 반환해주기 어렵다고 하였고, 세입자도 발을 동동 구르며 얼른 새로운 세입자가 구해지길 기다리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일반인의 법적 수준도 많이 올라가, 새로운 세입자가 구해지건 말건 상관없이 집주인은 보증금을 반환해야 한다는 인식이 대부분 자리잡았습니다. 당연하고 옳은 인식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이런 점을 악용한다 할까요? 최근 일부러 집주인이 새로운 세입자나 매수인을 구하는 것을 방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무조건 집을 안보여주겠다고 합니다. 집주인은 내 소유의 물건인데도 보여줄 수가 없습니다. 강제로 집을 보여주려고 했다가는 주거침입 등으로 고소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 집주인은 세입자가 거부하면 내 집을 보여주는걸 포기해야할까요? 아니 반대로 세입자는 집주인에게 협조해야할 의무가 전혀 없는걸까요?

 

 

종래 임대차분쟁에서 지금까지는 임대인이 임차인(세입자)이 부동산을 보여주지 않아 새로운 임차인을 구하지 못해서 보증금을 반환할 수 없었다.”라고 주장하는 경우조차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새로운 세입자를 구하지 못한 것은 임차인과는 무관하다고 보는게 당연했기 때문입니다. 설령 임차인이 부동산을 보여주지 않았다 하더라도 임대인은 임차인의 온전한 부동산 사용, 수익을 보장해야 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했습니다.

 

 

 

그런데 부동산을 보여주는게 과연 임차인의 임차목적물을 사용, 수익할 권리를 침해하는 것일까요? 오히려 임차인이 별다른 이유 없이 부동산을 보여주기를 거부하는 것은 임대인의 소유권, 재산권을 침해하는 것은 아닐까요?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부동산을 매수하거나 임차하려는 사람에게 보여주지도 않고 거래를 성사시킨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더군다나 임대차보증금이 되었건 매매대금이 되었건 적은 돈이 아니어서 부동산은 계약이 연속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소유자 입장에서 자금 융통에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 물론 임차인이 임대인(소유자)의 부동산을 보여달라는 요청에 무조건 응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에는 사회상규 내지는 일반인의 상식을 기준으로 할 수 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이를 넘어서 임차인이 합리적인 이유 없이 단지 임대인에 대한 악감정으로 부동산을 보여주기를 거부하는 경우라면 이는 법적 책임을 물을 소지가 다분하다 할 것입니다.

 

다만 이 경우에도 임대인은 보증금 반환을 전면적으로 거부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래도 적어도 임차인의 귀책사유로 인하여 새로운 계약을 체결하지 못하게 됨에 따라 입은 지연손해금을 청구하는 것은 가능할 것입니다.

 

 

오늘 다룬 분쟁사례의 기저에는 임대인과 임차인 사이의 사회적 갈등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10여년 전만 해도 임대인이 새로운 세입자나 매수인을 구하기 어려워지면 그 사정을 임차인도 함께 걱정했었습니다. 갈수록 사회적 대립구도가 심화되고 관계는 더욱 각박해지는 것 같습니다. 임대인도 어딘가에서는 임차인일 수 있고, 임차인도 어딘가에서는 임대인일 수 있다는 생각으로 조금씩 서로를 돕고 이해하기를 바래봅니다.